[적상산-한국의 산하]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가을뿐만 아니라 철따라 독특한 개성미를 가득 뿌린다. 적상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 등 자연 명소와 함께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이 있다.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6년(1628년)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적상산성 안에는 고찰 안국사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운치를 더해 준다. 적상산은 적상면 중앙에 솟은 향로봉과 기봉 두 봉우리를 주봉으로 한다. 북쪽 향로봉과 남쪽 기봉이 마주하고 있는 정상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하지만 지면에서 800-900m가량되는 산허리 까지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다. 험한 바위산인 탓에 등산로는 서창리 지소 쪽이나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안국사로 오르는 적상교가 일반적이나 안국사로 오르는 길은 돌비탈을 지나야 하고 길도 애매해서 지소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장도바위]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적상산 산정호수]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호라 명명되었다.
[안국사] 안국사(安國寺)는 고려후기에 창건되었으나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고, 조선후기에 적상산(赤裳山)에사고(史庫)가 건립되면서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다. 사고를 관리하는 관서가 있었지만 실제 관리는 절이 전담하였다. 국가에서 여러 차례공명첩(空名帖)을 지급하거나 지방 관청을 통해 절의 중건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사고의 수호사찰로서 절은 고역을 맡았지만 이로 인해 억불의 사회에서 절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10년 사고가 폐지된 후 일부 건물을 절로 옮겼다. 1989년 산중에 양수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원래의 자리는 수몰되었고, 남쪽으로 1㎞ 거리인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