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산행 기록

완도 보길도 고산 윤선도 원림

조포(민식) 2024. 2. 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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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보길도 고산 윤선도 원림
섬속의 낙원
고산 윤선도 원림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 선생이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이곳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게 되었으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가 이곳에서 창작되었다.
고산은 보길도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하여 부용동이라 이름 지었다.
그는 우선 섬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조그마한 세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짓고 기거했다. 그는 85세 낙서재에서 삶을 마치기까지 보길도의 곳곳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짓고 자신만의 낙원인 부용동 정원을 가꾸었다.
부용동 정원은 고산이 직접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놀이공간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에 해당한다. 누정이 누각과 정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면, 별서는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말한다. 고산의어부사시사'는 이 같은 별서를 배경으로 창작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부용동 정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거처하는 살림집인 낙서재 주변과 그 맞은편 산 중턱의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주변, 그리고 부용동 입구에 있는 놀이의 공간이라 할 세연정 주변이다. 이처럼 윤선도는 당쟁으로 시끄러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자신의 낙원에서 마음껏 풍류를누렸다. 여기에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소박한 생활을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 언제: 2024.02.16
2. 누구와: 나홀로
3. 산행코스: 부황리(동천석실입구)→ 동천석실→ 부황리→ 보길옛길→ 낙서재→ 곡수당→ 부황길→ 윤선도 원림(세연정)(4.7Km)
4. GPS 파일:

완도 보길도 윤선도 원림 탐방_20240216.gpx
0.06MB
완도 보길도 윤선도 원림 탐방_20240216.k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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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보길도 윤선도 원림 탐방

◆ 산행코스: 부황리(동천석실입구)→ 동천석실→ 부황리→ 보길옛길→ 낙서재→ 곡수당→ 부황길→ 윤선도 원림(세연정)(4.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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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석실 입구
동천석실 가는길
동천석실 가는길
동천석실 가는길
동천석실 가는길
동천석실 가는길
동천석실 가는길
동천석실 침실 입니다.
연지, 석담, 석천, 동천석실 정자 오른쪽 암벽 사이에 솟아나는 석간수를 받아 모으는 연지가 있고 벼량쪽을 석담, 바깥쪽 연지를 석천이라 한다.
동천석실 앞의 차바위, 동천석실 바로 앞에 패인 바위로 고산선생이 차를 끓이던 장소라고 전한다 바위에는 차상다라를 고정 할 수 있도록 몇개의 구멍을 파 놓았다. 이 곳에 올라서 앉아 청별황 격자봉, 곡수당, 낙서재, 남을계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다도를 즐겼다고 한다 낙서재 주변지형과 유사한 모양을 한 홈의 형태도 이채롭다.
동천석실의 연지, 석담, 석천
동천석실 차바위에서 바라본 광대봉과 격자봉의 능선 그아래 곡수당 낙서재가 보입니다.
동천석실
동천석실
동천석실에서 내려다 본 침실
동천석실의 석천, 석담, 연지
동천석실의 석담, 석담은 부정형 연지로 암석을 파서 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석천과 석담사이에 구멍을 뚫어 물이 통하게 하였다.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부황천 다리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낙서재 옛길을 따라 갑니다.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곡수당, 낙서재 주차장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곡수당, 낙서재 주차장의 보길도 관공안내도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먼저 낙서재로 향합니다.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동천석실→ 낙서재 가는길
낙서재 동와, 보길도지에 의하면 낙서재와 무민당 상이에 이곳과 서와를 지었다하여 각기 한 간씩인데 사방으로 퇴를 달았다고 한다.
낙서재 귀암, 낙서재 바로 앞의 커다란 바위는 귀암이라고 부리며'고산유고'의 '귀암' 시편에 나오는 4령 중의 하나이며 윤선도 선생이 달맞이를 하던 장소로 기록된 바위이며 낙서재 터를 고르는 데 중요한 지표가 외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이 바위의 존재를 모르다가 2011년 귀암이 발견되면서 낙서재 원형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낙서재, 고산의 주된 주거공간이었던 이곳은 1637년 보길도에 입도하여 이 섬의 주산인 격자봉 혈맥을 쫓아 집터를 잡고 3칸의 초가로 된 집을 지어 작품활동을 한 곳 이다. 윤위의 보길도지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하고 산맥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격자봉을 오르내리게 하여 높낮이와 향배를 헤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낙서재의 사당
낙서재→ 곡수당 가는길
낙서재→ 곡수당 가는길, 서재, 일삼교, 서재앞으로 나 있는돌다리는 일삼교라 불리며 고산의 5남 학관이 하루 세번 아바지께 문안을 드리거 건넌 다리라고 한다. 서재는 곡수 남쪽 두 골짜기 중앙에 입지해 있으며 강학을 위한 건물로 건립되었다. 당시 학유공 정유악, 심진사단, 고산의 5남인 학관 등 여러사람이 고산 선생에게 배우던 곳이다.
곡수당 앞 계곡
곡수당 상연지, 이곳은 상연지라 하며 사람의 키 정도 되는 방대 위에 가산을 만들고 허리 부분에 구멍 하나를 뚫어 돌로 된 통을 끼워넣은 뒤 뒤에서 물을 끌어와 물이 구멍을 통해 연못으로 쏟아지게 한 뒤 이를 비래폭이라 이름하였다.
곡수당 상연지 그리고 비래폭
곡수당에서 바라본 계곡과 하연지
곡수당, 곡수당은 격자봉에서 흐른 물이 이곳에 이르러 곡수를 이루고 있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윤선도 아들 학관이 휴식했던 곳이다. 담 밑에 흐르는 물은 낙서재 오른쪽 골짜기에서 연못으로 흘러 내리는데 이곳에 일삼교가 가설되어 있다 부용동 팔경 중 '연당곡수'가 이곳이라 한다.
곡수당 하연지,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배수로 위로 데크를 설치 동백나무 가로수와 잘 어울립니다.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동백꽃이 낙화 되어 있습니다.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곡수당→ 세연정 가는길, 윤선도 원림 세연정 입구 입니다. 입장료 3,000원
보길 윤선도 문학관, 윤선도문학관에서는 고산 윤선도의 생애와 어부사시사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세연정 가는길
세연정 가는길
세연정 가는
세연정의 바위들
세연정
세연정,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대한민국 명승 제 34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조선시대의 문신, 시인, 학자 윤선도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뜻으로 고산 선생의 고결한 품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세연정
세연정
세연정, 판석보 우리나라 조원(정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른다. 세연지 저수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건조한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보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그 안에 강회를 채워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세연정
세연정
세연정
세연정
세연지의 바위들
세연정 나가는 길
세연정 나가는 길
세연정 나가는 길
윤선도 문학관
윤선도 문학관
윤선도 문학관의 보길도 가경도, 윤선도 문학관을 둘러보고 윤선도 원림 탐방을 마무리하고 택시를 콜하여 노화도 산양진 항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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