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산행 기록

무등산국립공원 무등산 옛길

조포(민식) 2022. 10.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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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옛길

무등산 옛길은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오르던 길을 복원한 새 길이다. 무등산으로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늘 붐빈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를 품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 무등산(1187m). 대도시와 인접해서 이렇게 높은 산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흔치 않다. 그만큼 광주 사람들의 무등산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것들이 잃어버린 옛길과, 또 그 길과 함께 사라졌던 옛이야기들을 찾아 새 길을 놓았다.

옛길은 현재까지 총3구간이 만들어졌다. 1구간은 광주 도심과 무등산 산행을 시작하는 원효사를 잇는다. 2구간은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오르는 등산로. 3구간은 광주 도심에서 충장사를 거쳐 담양으로 이어진다. 3구간은 무등산 자락의 낮은 능선을 따라 난 숲길. 유적과 가사문화권으로 걸어가는 역사길이 불린다.

12구간을 합친 거리와 3구간의 거리가 12km 남짓으로 비슷하다. 무등산 옛길을 모두 걸어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틀이 필요하다. 12구간을 하루에 걷는 게 초보들에게는 무리일 수 있다. 12구간을 하루에 걷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직하게 1구간이 시작되는 광주 도심에서 걷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원효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2구간을 먼저 걸어볼 것을 권한다. 그 다음 체력을 가늠해 1구간을 역으로 내려오는 게 현명하다.

 

무등산

무등산은 내 마음속 산으로 산골 봉우리 모두 가보고 싶은 산입니다.

이번 산행은 화순 무등산 편백나무 휴양림에서 출발 안양산으로 오릅니다.

안양산은 무등산 국립공원지역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낙석 위험개소에 대한 관리번호를 부여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양산 능선을 올을때까지 별 여려움 없이 산행을 했습니다. 숲을 지나니 능선길은 온통 잡목과 억새 그리고 철쭉이 많았습니다.

안양산에 올라가니 무등산과 주면의 산들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2개나 있었습니다

낙타봉 장불재를 지나 다신 뒤돌아 안면산 쪽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수만리 탐방 지원센타를 지나 만연산으로 향합니다. 만연산은 화순 읍내에서 보면 삼각산으로 화순읍내와 아주 가까운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행지 이기도 합니다.

안양산은 무등산 정상뿐만 아니라 장불재 등 무등산 동부쪽을 모두 조망 할 수 있는 곳 이였으나 안개로 조망을 하지 못했습니다.

안양산에서 장불재쪽으로 하산을 시작하니 무등산 정상의 구름이 걷히면서 무등산 천왕봉을 조망 할수있도록열렸습니다.

장불재를 지나 다시 왔던길을 뒤돌아 나와 너목장, 만연산쪽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1. 언제: 2022.10.15
2. 누구와 홀로
3. 산행코스: 원효사주차장→ 제철유적지치마바위서석대입석대장불재석불암→ 지장너덜→ 규봉암신성대억새평전꼬막재오성원원효사주차장(14.0Km)

4. GPS 파일:

광주 무등산 옛길_20221015.gpx
0.15MB
광주 무등산 옛길_20221015.kml
0.12MB

☞ 클릭: 광주 무등산 옛길(https://www.ramblr.com/web/mymap/trip/439148/4702825/)

 

광주 무등산 옛길

◆ 산행코스: 원효사주차장→ 제철유적지→ 치마바위→ 서석대→ 입석대→ 장불재→ 석불암→ 지장너덜→ 규봉암→ 신성대억새평전→ 꼬막재→ 오성원→ 원효사주차장(14.0Km)

www.ramblr.com

금곡동 제철유적 무등산 내에는 김덕령이 칼을 주조했다고 전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원효계곡 상류에 위치한 ‘금곡동 제철유적’이다. 무등산 산장입구 주차장에서 무등산 옛길을 따라 15분 정도 걷다보면 좌측에서 이 유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금곡(金谷)이라는 이름은 ‘쇳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 유적지는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鐵滓)들이 남아 있어서 일찍부터 제철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곳이다. 1992년 3월 12일부터 4월 11일까지 약 한달 동안 국립광주박물관이 한신대학교 박물관과 함께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가공하는 시설 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조사 결과 쇠로 만든 화살촉, 추 모양의 철기, 못 등이 발굴되었다. 현재 이곳은 1994년 2월 18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 유물들만으로는 임진왜란 때 김덕령이 이곳에서 무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주검동표지석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일동(万曆癸巳 義兵大將 金忠壯公 鑄釰洞)” 『광주목지(光州牧誌)』에는 주검굴이 무등산 입석대 위에 있고 김덕령 장군이 의병을 일으킬 때에 이곳에서 대검을 주조했다고 하였다. 나도규(羅燾圭, 1826~1885)의 유산기 「서석속록(瑞石續錄)」에는 주검굴이 무등산 상봉에 있다고 더 정확한 위치를 기록하였다. 나도규보다 뒤에 무등산을 다녀온 이연관(李淵觀)이 남긴 유산기에도 주검굴이 무등산 정상부에 있다고 했다. 19세기에 작성된 고지도에도 입석대 위에 ‘김충장공주검굴’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주검동과 또 다른 제철유적 혹은 김덕령이 칼을 주조한 곳이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흔적들을 종합해 보면 지금의 금곡동 제철유적이 주검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서석대에서의 인증샷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의 남서쪽에 위치한 서석대(1,050m)는 임석대(950m)와 함께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에 속하며, 높이 약 30m, 너비 1~2m의 다각형 돌기둥 200여 개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무등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주상절리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명명된 화산암으로서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700~8,500만년 전)에 분출된 화성쇄설물로 형성된 용결응회암이다. 이 응회암이 천천히 식는 동안 부피가 줄어들며 수축될 때 인장력이 작용하여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무등산이 광주를 품 듯 시가지의 전경과 멀리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고 해질녘 서석대에 비치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입석대 입석대는 무등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해발고도 약 950m에 위치하며, 서석대(1,050m)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465호인 무등산주상절리대에 속한다. 주상절리대는 약 120여 미터 동서로 줄지어 선 40여 개의 너비 1~2m의 다각형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상절리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700~8,500만년 전)에 분출된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불리는 화산암이다. 입석대 상부에는 승천암이라 불리는, 주상기둥이 옆으로 기울어져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양을 가진 독특한 형태의 바위가 있다.
장불재는 무등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정상부의 주상절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곳은 과거 주빙하기후의 영향으로 동결융해에 의한 사면평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곳으로, 무등산 정상부, 특히 입석대와 연결되어 있어 이 지역이 과거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장불재가 형성된 시기는 약 5만 년~6만 년 전 이며, 거의 평탄하면서 완경사인 장불재의 사면은 주빙하 환경에서 표토의 사면 이동이 일어나면서 토양 및 암괴 등 풍화 산물의 불규칙한 면들이 메워지면서 평탄하고 완만한 사면이 형성되었다.
지공너덜 지공너덜은 무등산 정상 아래, 해발고도 약 1,000~1,100m 사이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폭 150m에 이르고 상부 경계가 아래로 들어간 혀 모양의 형태로 발달되어 있다. 너덜의 평균 경사는 20~35도이며, 너덜을 구성하는 암괴의 크기는 최대 4~5m에 이른다. 지공너덜은 남동쪽에 위치한 규봉 주상절리와 함께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 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지공너덜이라고 명명하였고,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전설이 있다.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이 없고 다만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지며 혹은 고려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규봉암의 현판이 전해 오다가 절취당했다고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말에 왜적들과 전투를 벌였던 격전의 현장이기도 한데 이성계가 전북 황산대첩에 나가 왜적과 싸우다가, 규봉암으로 도망친 왜군 폐잔병 12명을 생포했다는 기록도 있다. 1739년 3월 20일에 쓴 규봉암 상량문이 발견되어 당시에 규봉암을 재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지도서(1759)에 의하면 폐찰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로보면 규봉암이 그리 크게 증축되지 않았거나 다시 폐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규봉암과 광석대 광석대(규봉 주상절리)는 서석대, 입석대와 함께 무등산을 대표하는 3대 주상절리대로서 해발고도 약 850m에 위치한다. 규봉 주상절리대는 북서쪽에 위치한 지공너덜과 함께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 수행처인 규봉암을 중심으로 늘어선 주상절리대의 높이는 약 30~40m이며 최대 너비는 약 7m에 이른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규모이고, 구성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불리는 화산암이다.
억새평전에서 바라본 신선대
억새평전에서 바라본 누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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